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드웨이 해전 (문단 편집) ==== 일본군 기동부대의 반격 ==== >'''히류는 아직 건재하다.''' >'''( 飛龍ハ健在ナリ )''' > >'''이쪽이 지금부터 항공전의 지휘를 맡겠다.''' >'''( 我レ今ヨリ航空戦ノ指揮ヲ執ル )''' >---- >히류에서 발신된 신호[* 다만 1항공함대 전투상보에는 이 기록이 없으며 전투상보에는 10시 58분에 2항전 기함 히류가 8전대 기함 토네(8전대 사령관 아베 제독이 임시로 기동부대 지휘를 맡음)에 "지금 전 기(全機) 발진, 적 공모를 격멸할 것임." 이라고 발신한 기록이 있다.] 10시 40분경 히류를 공격하던 요크타운 소속의 제3뇌격기대대가 전멸하면서 미군 항모에서 발진한 비행대의 일련의 공격은 일단락되었다. 일본군의 항공모함 4척 중 3척이 10시 22분부터 약 5분여만에 격침의 운명을 맞게 되었고, 히류 1척만이 살아남게 된 상황이었다.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가 전멸한 직후인 10시 40분, [[아카기(항공모함)|아카기]]가 불길에 휩싸이고 나구모가 아직 아카기 함상에 있던 그 때, 제1기동함대의 차석 지휘관인 8전대장 아베 히로아키 제독은 히류에 타고 있던 제2항공전대장 야마구치 다몬 제독에게 발 급강하 폭격기 18대와 제로 호위 전투기 6대를 출격시켜 미국 함대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상의 상황은 일본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2011)에 묘사되어 있다. [youtube(OWCa19GSeXA)] || [[파일:hiryu.jpg|width=100%]] || || 1942년 6월 4일 99식 급강하폭격기대를 발함시키는 히류[* 이 사진은 조너선 파셜, 앤서리 설리의 Shattered Sword를 통해 서구사회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다. 6월 4일 10시 57분 출격한 고바야시의 급강하 폭격기 공격대를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에는 6월 1일~3일 사이에 촬영된게 아니냐는 반론도 있었으나, 당시 일본 제1 항공함대의 작전 개요를 보면 히류는 6월 1일~3일 사이에 저렇게 대규모의 항공기를 일제 발함시킨 적이 없었으며, 오로지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 당일에 아카기, 카가, 소류가 피탄당한 이후에 반격을 위해 99식 함상폭격기를 발함시킨 것 밖에 없다. 따라서 저 사진은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의 바로 그 순간을 촬영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 10시 57분 히류에서 급강하 폭격기 부대가 발진했다. 히류의 폭격기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은 고바야시 미치오 대위였다. 히류의 급강하 폭격기 부대는 정찰기가 보고했던 지점으로 날아가려고 했지만 마침 항모로 귀환하는 미국 폭격기 부대가 보이자 그들을 추적했다. 그들은 요크타운 소속의 비행대였고, 그 때문에 요크타운이 공격받게 된다. 한편 12시경 요크타운은 [[레이더(전파탐지기)|레이더]] 덕분에 90km 전방에서 접근해 오고 있는 히류 소속 급강하 폭격기들을 미리 발견하고 방어 준비에 나선다. 요크타운은 귀환하던 급강하 폭격기들의 착함을 중지하고 요크타운 상공으로 날아온 급강하 폭격기들은 모두 엔터프라이즈로 보내 버렸다. 그리고 함재하고 있던 전투기들을 급히 이함시키고 대공 전투를 준비했다. 또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 전투기 28대가 요크타운을 지원하기 위해 날아왔다. [[레이더(전파탐지기)|레이더]] 덕분에 일본 폭격기들의 접근을 미리 파악한 미군은 일본 급강하 폭격기 부대를 저지하기 위해 와일드캣 전투기들을 미리 출격하여 원거리로 마중 나가게 했다. 와일드캣 전투기들은 18기의 일본 급강하 폭격기 중에서 11기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일본 발 폭격기 7기가 와일드캣 전투기와 구축함 대공포의 방어망을 뚫고 요크타운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요크타운의 대공포가 일본 폭격기 2기를 추가로 격추했다. 공격대 지휘관인 고바야시 미치오 대위도 전사했다. 요크타운에 도달한 발 폭격기들은 급강하에 들어가 폭탄을 투하했고, 3발의 폭탄이 요크타운에 명중되어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1기의 폭탄이 하필이면 굴뚝을 타고 들어가 기관실이 타격을 입는 바람에 큰 낭패를 봤다. 플레처 제독은 이를 기점으로 부대 지휘권을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넘겼다. 하지만 요크타운은 이미 공격에 대비하여 연료관에 불연성 기체인 [[이산화 탄소]]를 연료관이 터질정도로 빵빵하게 집어넣었고, 무장들은 안전한 곳으로 치우면서 최대한 신관을 제거했고 일부 폭탄들은 신관만 쑥 뽑은 채 바닷속에 버리기도 했다. 특히 단가 높은 큰 폭탄들이 대상이었을 정도로 확실한 조치를 미리 완료했으므로 일본 항공모함과 같은 꼴을 겪지는 않았다. 게다가 당시 미군은 일본군에 비해 [[대미지 컨트롤|손상 관리 및 복구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 원래 미 해군은 전 함정 승조원들의 화재 대처 능력 및 함정 보수 능력 향상에 크게 투자하고 있었다(단, 항공기 승무원들은 예외). 사실상 전 승조원이 소방 요원이자 보수 요원인 셈으로, 소수의 보수 인원에만 의지하던 당시 일본 해군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특히 요크타운은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벌어진 [[산호해 해전]]에서 입은 피해 때문에 수백명의 기술자를 탑승시킨 채 출항하여 운항 중에 계속 수리를 하고 있던 차였다. 덕분에 요크타운은 일본군의 1차 공격을 받은지 30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주요 기능을 상당부분 복구하고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보일러의 재가동과 갑판의 복구를 마쳤다. 미군의 놀라울 정도의 복구 능력을 알지 못한 야마구치 제독은 요크타운이 큰 피해를 입어 무력화됐다고 판단하고, 새로 발견한 엔터프라이즈를 다음 공격 목표로 잡고 [[토모나가 죠이치|토모나가 대위]]에게 어뢰공격기 10대와 전투기 6대로 구성된 2차 공격대를 이끌고 출격할 것을 명했다. 원래는 12시 20분께 출격을 요구했지만, 당일 새벽부터 함재기 출격준비 및 귀환한 기체의 정비에 쉴틈없이 시달리던 항공 정비병들이 거의 그로기 상태였기 때문에, 토모나가 대위의 공격부대는 13시 30분에 히류에서 출격했다. 오후 2시 54시경 토모나가 대위의 일본군 2차 공격대가 요크타운 상공에 도착했을 때, 요크타운이 정상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아까 공격하여 무력화시킨 요크타운이 아닌 다른 항공모함이라고 판단하고 공격에 들어갔다. 당시 토모나가 대위의 2차 공격대에는 뇌격기 편대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뢰를 먼저 하나 발사하여 요크타운이 회피하도록 유도하고 회피 시 도달하는 지점에 또 다른 어뢰가 명중하도록 하는 고난도 공격 기술을 실행하였다.[* 이것은 말은 쉬워 보일지 몰라도, 무전기 기술이 개판 5분전인 일본의 뇌격기로 하기에는, '''상당한 베테랑 파일럿'''이 필요했다. 서로간의 소통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대공화망을 뚫고 이런 고난도의 기술을 보여줬다는 소리. 대전 초기 일본의 파일럿들이 얼마나 정예였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단, 지속적인 전투로 조종사를 손실한 일본은 [[산타크루즈 해전]]을 마지막으로 베테랑 파일럿들을 모두 소모해버리고 만다.] 그 결과 요크타운은 2발의 어뢰에 얻어맞았으며, 이것이 치명상이 되어 결국 침몰하기 시작하였다. 일본군의 전투 보고에 따르면 토모나가 대위는 요크타운을 공격하던 중 대공포화에 맞자 그대로 요크타운의 함교 근처에 들이받고 전사했다고 하는데, 이는 '야마모토 이소로쿠'나 [[애니멘터리 결단]]처럼 일본에서 제작한 관련 작품에서 빠짐없이 언급되는 에피소드이다. 귀환이 불가능할 때 자발적으로 들이받는 행위는 미군에서도 가끔 일어난 행위라서[* 대표적인 인물이 본문에도 언급한 로프톤 헨더슨 소령이다.] [[카미카제]]와는 다르긴 하지만, 요크타운의 미드웨이 해전 피해 보고서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http://www.wwiiarchives.net/servlet/action/document/page/1283/24/0|Yorktown (CV-5) War Damage Report - March 9, 1943 (Midway)]] 정황상 단순 피격 후 요크타운 주위에 추락한 것을, 격전 도중 동료 조종사가 요크타운에 충돌하였다고 오인하여 보고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파일:attachment/yorktown.jpg]] 더 이상 요크타운이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함장 엘리엇 벅매스터 대령은 곧 퇴함 명령을 내렸다. 이전의 교전으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승조원들은 대단히 여유 있게 퇴함했다고 한다. 많은 승조원들이 퇴함 전 비행갑판에 [[손목시계]] 등 자신의 소지품 약간을 놓아두고 다시 돌아올 것을 기원하기도 했다. 벅매스터 대령은 가장 마지막에 남아서 퇴함하지 못한 승조원이 있는지 확인한 후 퇴함했고 곧 구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